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를 응시할때만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를 응시하는 것의 분리는 불가피한다. 그러므로 본다는 행위는 두가지 개념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이러한 모순된 명제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줄리앙 스피웍은 예술적 표현으로 인간의 몸과 사진의 관계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진가이다. 프랑스와 브라질의 역사 박물관을 배경으로 제작된 시리즈를 보면, 처음 이미지를 대하는 순간 관찰자의 시선은 우아함과 디테일이 잘 묘사되도록 명확한 조명과 정면성으로 촬영된 고전의 배경과 그 시대에 만들어진 가구, 그것과 어우러진 장식들에 직면하게 된다. 언뜻보기엔 엔틱가구 카탈로그나 혹은 박물관 자료를 기록하는 사진작업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조금 더 주의깊게 바라보다 보면 줄리앙 스피웍의 사진속에서 또 다른 디테일한 세부를 발견하게 된다.
테이블 아래 있는 다리, 엔틱의자의 라인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팔, 고전 회화작품으로 삽입되어 있는 손. 이러한 몸의 일부는 알아채기 힘든 미묘함으로, 때로는 유머스러움으로 가구와 일체가 된다. 사진속에서 게임이 설정되어 있다는 작가의 제안을 바로 알아차려야만 한다. 우리의 시선은 커튼, 회화작품, 가구에 삽입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사람의 피부는 완전한 결합으로써, 벽과 가구의 질감과 합쳐진다. 청동조각상 뒤로 살짝 보이는 사람의 옆모습, 금사자상 입에서 튀어나온 마치 붉은색 혀로 착각하게 되는 손가락, 한참 전쟁중인 청동상 말의 갈기를 살짝 잡은 손가락 등은 배경과 완벽하게 하나로 이루어진다. 때로는 세부묘사가 매우 미묘해서 몸의 일부를 찾으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진속에서 인체 조각을 발견할때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재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변형하고, 생명을 불어넣고, 연출한 의자속에 삽입된 몸의 일부 또는 팔을 발견함으로써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인체는 역사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갖고 함께 공존한다. 줄리앙 스피웍의 사진은 단순히 실제 이미지를 캡처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만의 새로운 실재(實在)를 구축하고 만들어가기 위한 관념적인 세계이다. 그의 의도는 « 낯선 몸 »을 역사적인 장소에 가져다 놓는 행위인가 ? 또는 지각을 일깨우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인간다움을 상상하는 것인가 ?
팔의 정맥, 대리석의 무늬. 상처가 있는 피부, 예술을 위한 켄버스. 숨겨진 존재, 인식의 부재. 이렇게 작가는 우리에게 게임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의 숨바꼭질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경직되고 엄격한 분위기속에서 순간과 영원함, 삶과 지속성을 생각하고 우리를 일깨우기 위해 삽입된 무언가를 지각할때 정체된 박물관에 활기와 생동감을 준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일깨워주는 모든것들… 일깨우다, 이것이 예술의 실제 기능이다.
글 / 이자벨 산송 포르텔라, 미술사와 미술평론 박사, 브라질 리오 박물관
번역 / 이규정, 박채형